2013. 11. 17. 16:31 잡다/본다

김언수, 캐비닛

 


캐비닛

저자
김언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6-12-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류 최후의 혹은 인류 최초의 인간, 심토머172일 동안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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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종합소득세와 같은 항목에 해당되는 사람이 되었고, 세금공제, 고용보험, 주 5일 근무 따위의 뉴스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에브리데이가 할리데이'였던 암흑 같은 시절에 비해 그것은 너무나 훌륭한 변화였다. 그리고 월말이면 월급명세서에서 우르르 빠져나가는 갖가지 공과금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뭐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지. 일기를 쓰는 삶과 일기를 쓰지 않는 삶. 그것은 역사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만큼이나 삶의 모든 것에 큰 영향을 미친단다. 수잔, 너는 어떤 삶을 택하겠니?

 

수잔 브링은 일기를 쓰는 삶을 택했다. 그리고 남들과는 다르게 일기를 조금씩 고치는 삶도 택했다. 문자의 신비에 눈을 뜬 그녀는 지난 문맹 시절을 보상받으려는 듯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자신의 삶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속의 비밀에 더 많이 접근하면 할수록 그녀는 너무나 멍청하게 지내온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은 그녀의 현재를 위축되게 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녀는 인간의 존재가 자신이 보낸 과거의 시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전력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이 도시에서의 거지 같은 삶이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

 

-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가끔씩은 고향을 잊어버리고 유목민이 되어야 하죠."

 

-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 우주는 우리에게 말한다.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질서는 안 돼. 그러면 모두 깡통이 되어버려. 그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내면의 질서를 조용히 견뎌봐. 내가 각자의 특이성에 맞춰 시계를 줘쓴ㄴ데 왜 아무도 그걸 사용하지 않는 거지?"

 

이 우주적 가르침에 따르자면 한 개체가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의 사이클이란 언제나 '자신의 시간' 단 하나뿐이다. 우리에게 이해심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애당초 이해란 걸 할 수가 없다. 번개돌이는 달을, 달은 토끼를, 토끼는 번개돌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더 빨리 늙어가고, 누군가는 더 빨리 배가 고프고, 누군가는 더 빨리 사랑했다가 더 빨리 식어버리고, 또 누군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졌다며 밤새 죽을 듯이 울고 난 다음날 새로운 남자와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 내가 너희만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쩌자고 이따위냐? 같은 말뿐이다.

 

 

 

 

 

 

 

Posted by 새벽의옥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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