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30. 21:39 잡다/본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사양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수도 있습니다. 상처 입기 전에, 빨리 이대로 헤어지고 싶다는 초조한 마음에서, 다시 익살의 연막을 치게 됩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 아무 것도 모릅니디. 제대로 알지고 못하면서, 둘도 없는 친구처럼, 평생을 눈치채지 못하고, 상대가 죽으면 울면서 조문을 읽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불행은, 거부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남이 권하는 것을 거부하면, 상대방의 가슴에도 제 가슴에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어색한 틈이 생길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양
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전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9년 전의 어느 날, 제 가슴에 아련한 무지개가 떠올라, 그것은 애정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무지개는 선명하고 뚜렷한 색으로 변하여,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것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소나기가 내린 후의 하늘에 솟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인간의 가슴에 솟는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에 내 냄새는 티끌만큼도 배어 있지 않은 듯하였다. 나는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도,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기묘한 생물처럼 생각되어, 나 혼자만 내버려져, 아무리 불러도 전혀 반응이 없는 황혼의 가을 벌판에 서 있는 듯한, 이제까지 느껴 본 적이 없는 처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실연이라는 것일까? 벌판에 이렇게 무작정 서 있는 동안에 해가 져 버려, 밤이슬에 얼어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니, 눈물도 나지 않는 통곡인지, 양 어깨와 가슴이 격동하며,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행복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한계를 넘어서 느끼게 되는 희미한 빛과도 같은 기분이 행복이라면, 폐하도 어머님도 그리고 나도, 분명히 지금 행복한 것이다.
'잡다 > 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0) | 2013.10.09 |
---|---|
김현지, 청춘이라는 여행 (0) | 2013.10.07 |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한근태 - 와닿은 구절들, 신기하게도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것들이 많다. (0) | 2013.08.13 |
김병우, 더 테러 라이브, 2013 (0) | 2013.08.08 |
리치 무어, 주먹왕 랄프, 2012 (0) | 2013.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