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저자
무라카미 류 지음
출판사
태동출판사 | 2008-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무라카미 류의 데뷔작!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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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05

은빛 바늘은 점점 더 굵어지고 병원 안뜰의 웅덩이는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면서 더욱 넓게 퍼져 간다. 바람이 웅덩이에 파문을 만들고, 희미한 빛의 띠들이 흔들흔들 떨린다.


p. 110

"릴리, 자동차로 드라이브한 적 있지? 몇 시간이나 걸려 바다라든가 화산으로 가는 거야. 아침에 아직 눈이 따끔거릴 만큼 졸릴 때 출발하여 도중에 경치가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물통의 차를 마시기도 하고, 낮에 점심 식사로 풀밭에 앉아 주먹밥을 먹기도 하는 그런 흔해빠진 드라이브 말인데.


그 달리는 차 안에서 말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겠지? 아침에 출발할 때, 카메라의 필터가 안 보였는데 어디에 넣어 두었을까? 라든가, 어제 낮 시간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 있던 그 여배우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리고 구두끈이 끊어질 것 같다든가, 교통 사고가 날까봐 겁이 난다든다, 벌써 내 키도 성장이 멈췄네, 하든가 아무튼 별의별 생각을 다하지 않아? 그러면 떠오른 그 생각이 차에서 보이는 풍경과 겹쳐져 가는 거야.


집이라든가 논밭이 계속 다가왔다가 다시 뒤로 달아나잖아? 그러니까 머릿속의 상념들과 밖의 경치가 서로 섞여 버리는 거야. 길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비틀비틀 걸어오는 양복을 입은 술 취한 사람이라든가, 손수레에 귤을 가득 싣고 가는 아주머니라든가, 꽃밭이라든가, 항구, 화력발전소가 말이야. 눈에 들어왔다가 금방 사라지니까, 머릿속에서는 앞서 생각하고 있던 것과 섞여 혼합돼 버리는 거야. 이해하겠어?


카메라의 필터와 꽃밭, 그리고 발전소가 하나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눈에 보이는 것들과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천천히 머릿속에서 섞어, 꿈이라든가 읽은 책이라든가 기억들을 찾아내어 오랜 시간에 걸쳐 뭐라고 할까, 하나의 사진, 기념 사진 같은 정경을 만들어 내는 거야.


..."



Posted by 새벽의옥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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