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저자
김연수, 금정연 (대담)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4-05-0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등단 20주년, [청춘의 문장들] 10주년, 김연수 작가의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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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루미의 시는 이렇게 묻는다. 오늘 너의 기분은 어땠는지? 마음 속으로 어떤 손님이 찾아왔는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잠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내다가 떠난 고마운 손님이었는지, 이불이 더럽다고 화를 내느라 밤새 잠들지도 못하다가 급기야 집을 부수기 시작했던 난폭한 손님이었는지. 네 마음 속으로 그 어떤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해도 너는 언제나 너일뿐, 그 손님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네 마음속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를. 그가 어떤 사람이든 화를 내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기를.

 

p.27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 대신에 그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또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와 어머니였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을 하는 곳이 바로 아이에게는 낙원이겠지.

 

p.42-43

이제 당신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게 어떤 경험이든, 생각해보세요, 그 경험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당신들을 만든답니다. 그러니 더 치열해지세요, 더 절실해지세요, 그건 모두 다시는 맨 처음의 그 기분으로 경험할 수 없는 슬픔이거나 기쁨이거나 외로움이거나 환희랍니다. 세상의 모든 두 번쨰 사랑이 첫 번째 사랑의 그림자나 마찬가지이듯이 말입니다.

 

"꿈들! 언제나 꿈들을!"이라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양의 천연적 아편을 자신 속에 소유하고 있는 법. 이 끊임없이 분비되며 새로워지는 아편을이라고 노래한 사람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였습니다. 그 아편의 대부분은 스무 살 무렵에 만들어집니다.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더 많이 갈망하시길.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시길.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더 많은 꿈들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당신들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그러니 지금 스무 살이라면, 꿈들! 언제나 꿈들을! 더 많은 꿈들을!

 

p.47

그때 타임머신 같은 걸 타고 20년 뒤에 내가 어ᄄᅠᇂ게 사는지 보고 왔더라면 훨씬 조급하지 않게 살았을 것 같긴 해요,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알 테니까 만사를 느긋하게 대했을 것 같아요, 스무 살 EO는 너무 조급했어요. 마치 서른 살 이후가 없는 사람처럼요. 매사에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늦어진 것들이 참 많아요. 인생의 지혜는 대게 역설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서른 이후에도, 흔 이후에도 이렇게 살 줄 알았다면 얼마나 여유로운 20대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p.52

그래서 제가 쓰는 걸 지금의 20대 친구들이 읽고 자신과 다른 세대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제가 젊은 세대를 자주 만나거나 연구하진 않거든요. 그냥 쓰던 대로 쓸 뿐이죠. 그런데도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건 경험의 세계가 안정되면서 균질해졌기 때문이죠.

서구 쪽은 1968년부터 그런 균질한 경험 세계가 찾아왔고, 우리는 그 20년 뒤인 1988년부터 그렇게 됐죠. 세대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그렇게 됐어요. 20대 한국 작가의 소설이나 미국 작가의 소설이나 이란 작가의 소설이나 이젠 똑같이 읽혀요. 세계가 평평해졌기 때문에요.

 

p.61

나는 뭔가를 제멋대로 착각하게 되면 거짓도 충분히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76

그래서 나는 열심히 쓰면 모두가 다 잘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가능성은 높아지겠죠. ‘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어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가능성이 높아져는 전혀 다른 말이에요. 그 사이에는 우연과 운 같은게 숨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쓰는 일뿐이에요. 그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만 하는 거죠. 그다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이에요.

 

p.144

돌이켜보면 열심히 산다는 건, 그 많은 나날들을 열심히 과거 속으로 보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p.147

그해 봄, 그녀 덕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바람은 지나간 뒤에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봄날도 마찬가지다. 봄날은 지나간다고 말할 때는 이미 봄날이 다 지나간 뒤다. 어제 피었다가 오늘 저녁에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지나가는 봄날은 자취 없고 가뭇없다.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은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지나간다. 만약 우리가 행복했었다면, 뭘 몰랐기 때문,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p.156

글을 쓰지 않고, 막연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마찬가지예요. 글을 쓸 때에만 우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을 쓰기만 해도 우리는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생각과 행동,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이나 아는 것은 그 사람이 행동할 때에만 우리가 볼 수 있어요. 전에 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은 이제 바뀐 거예요. 나아진 거죠.


p.167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인데 이건 실로 어마어마한 의미예요. 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앞선 세대를 반복하기 때문인데, 그걸 안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 세계를 한번 바꿔보겠다는 의미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바뀌지 않았어요. 살인자들은 여전히 카인을 반복해요. 그래서 고전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세계가 그대로인 한에는 나중에 나온 책들은 역시 최초의 고전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p.180

대신에 노트에다가 뭔가를 쓰는 일은 도움이 됩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노트에다 손으로 뭔가를 쓰면,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쓰게 되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날마다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일은, 신경안정제를 먹는 일보다 더 좋아요. 그게 무슨 내용의 글이든. 그떄는 손으로 쓰시길.

 

p.193

언제 어떤 순간에도 기억하는 것만이 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진실을 잘 몰라요. 실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매 순간 까먹거든요. 대개의 경우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몰라요. 그러니까 타인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잊지 않기 위해서, 예컨대 지는 꽃은 한때 피어나는 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쓰지만,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그 사실을 늘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작가의 딜레마입니다. 글쓰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p.196

청춘이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상태, 그래서 뭔가에 그 시간을 쏟고 나면,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시간만 흐른다면 저절로 끝나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해요. 해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청춘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노랫말처럼 젊을 때는 젊음을 몰라요. 인류가 계속되는 한, 청춘의 무지는 반복될 뿐이에요. 그러니까 <청춘의 문장들>을 읽는다고 해서 젊은 독자들이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야겠다. ,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건 무리겠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까 대충 살아도 됩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기도 하고, 그냥 시간만 보내기도 하고요. 청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에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p.206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대,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떄 만나게 된다'

 

p.207

어제는 비가 개서 그런지 날씨가 좋았다. 저녁에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었다. 순간 나는 '내가 아는 공기다' 중얼대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아는 저녁, 내가 아는 계절, 내가 아는 바람. 그러니까 어릴 때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기 전, 늦게까지 밖에서 놀던 날의 날씨. 그러고 보니 봄 시간은 정말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돌아오고 어느 때는 나보다 먼저 저 앞에 가 있다 나를 향해 뚜벅뚜벅 자비심 없는 얼굴로 다가오고 때론 한없이 따뜻한 얼굴로 멀어지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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